‘의향(義鄕) 전남’은 임진왜란, 대한제국 전후 등 의병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지역으로 정체성 확립과 자긍심 고취의 상징적인 공간 필요 - 1909년 국내 교전 의병 수의 45.5%가 전남 의병(한국독립운동사)
국난극복의 선봉에 섰던 의병 선열들의 충절 정신을 기리고 계승·발전과 선양하는 일은 오늘을 사는 후손들의 당연한 책무
(임진왜란 전후) 을묘왜변(1555년), 임진왜란(1592년), 정유재란(1597년)
(17세기 초) 이괄의 난(1624년), 병자호란(1636년)
(대한제국 전후) 을미의병(1895년), 을사의병(1905년), 정미의병(1907년)
| 의병(義兵) | 나라가 외적의 침입으로 위급할 때 나라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외적에 대항하여 싸운 민군(民軍)을 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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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병은 | 임진왜란, 병자호란, 구한말에 양반, 농민, 승려, 천민 등 신분과 성별에 구별없이 이름 없는 많은 백성들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 바쳐 싸웠습니다. 이러한 의병정신은 3·1운동과 독립운동으로 이어져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원천이 되었습니다. |
| 남도의병은 | 난중일기 등에 출신지를 알 수 있는 1천여 명 중 절반 이상이 전라도 사람이고, 1909년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의병 중 46%인 17,579명이 전남 의병입니다. |
“나라는 멸할 수 있어도 의병은 멸할 수 없다.
의병은 우리 민족의 국수(國粹)요 국성(國性)이다.” - 박은식 선생(1859~1925) -